-젤롯(Zealot), 레자 아슬란 저

오랜만에 상당히 재미있게 읽은 책입니다. 원래 집에서 밥먹으면 침대에 앉아 페북도 하도 뻘짓도 하는데, 이 책은 밥먹고 바로 책을 읽게 만들었네요.

이 책은 예수의 삶을 종교적인 측면이 아니라 역사적인 측면, 탐구적인 측면에서 바라봅니다.

책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예수는 유대민족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하고 해방시키기 위해 유대 혁명 운동을 펼친 '젤롯(스타크래프트에서도 나오는 질럿과 같은 단어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는 애초에 '메시아'가 아니라 혁명 지도자였다는 말입니다.

예수 이전에도 이와 같은 젤롯은 여러명 있었죠. 그러나 모두 실패해 사형당했고, 예수 또한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젤롯들은 모두 잊혀졌는데, 유독 예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예수의 부활을 알렸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사후(또는 부활 후) 초기 기독교는 크게 둘로 나뉩니다. 하나는 유대 율법을 강조한, 예수의 동생인 야고보를 중심으로한 이른바 '유대파'였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율법에 상대적으로 크게 구애받지 않았던, 유대-로마 전쟁에서 짓밟힌뒤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을 중심으로 퍼진 '헬라파'였고요.

어쨋든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다 죽은 순교자들이 나왔고, 바리새 유대인이었던 사울은 예수의 부활을 믿던 유대인들을 잡아 죽이러 다닙니다. 기존의 유대교인들이 '예수의 부활'이라는 믿음을 이단시 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그러다 예수를 만나는 '영적' 경험을 하고, 이름을 바울(바울로)로 바꾼 뒤 열렬한 기독교인이 됩니다.

바울은 특히 헬라파 기독교인에게 예수의 부활이라는 새로운 믿음을 퍼뜨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기독교가 퍼지면서 이들을 위한 성서가 필요했지요. 4대 복음서 등이 그렇습니다.

저자는 복음서 등의 기자(쓴 사람)들이 어떻게 사실을 각색 했는지 자세히 이야기해줍니다(각 복음서의 이름은 그 복음서를 실제로 쓴 사람의 이름이 아님). 새로운 성서는 유대 민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를 새로 받아들일 로마 시민과 이방인들을 위한 것이여야 하는게 큰 이유였죠.

가령, 예루살렘 총독이었던 폰티우스 필라투스(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를 사형시킬지 군중에게 물어본다던지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예수가 필라투스에게 직접 심문을 받았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일이죠. 당시엔 예수같은 젤롯이 한 둘이 아니었고, 예루살렘 총독도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둘 사이에 이 정도 대화가 오갔지 않았을까 하는게 저자의 설명입니다.

"당신이 메시아요?"
"......"
"사형."

책에 따르면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를 만났다는 이야기도 당시 정황 상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신앙의 대상이 되어야하는 예수가 혁명의 실패자로 남아있어서는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서에는 예수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왕으로 오르는 나라는 유대 왕국이 아니라 하늘의 나라가 된다는 식의 이야기가 들어가죠. 바울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완전히 새로운 교리를 제시합니다.

하여간 이러한 노력으로 유대교와 떨어진 기독교는 로마에 빠르게 퍼져나갔고, 예수를 십자가에 달아 죽였던 로마는 결국 기독교를 국교로 지정합니다.

줄거리는 이쯤 하고, 이 책은 제가 가진 궁금증을 대체로 만족스럽게 충족시켜줬습니다. 처음에 제가 알고 싶었던 것은 성서가 어느 정도의 허구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느냐였거든요.

책을 보시면 아시겠지면 저자가 저술을 위해 참고한 책이 많은 만큼 주석만 해도 엄청납니다. 그만큼 저자가 철저하게 성서를 학구적으로 연구해서 책을 썼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저자의 풀이가 맘에 듭니다.

그런데 책에서 저를 가장 강력하게 붙잡았던 점은 성서의 허구성이 아니라, 예수의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예수의 부활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 입니다. 저자도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합니다.

저한테는 저자가 책에서 풀어낸 성서의 허구성이, 마치 예수의 부활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건 제자들이라는 요소를 오히려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로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삼위일체론 등등 기독교에 대한 신학자들의 이론과 해설은 결국 나와 같은 '사람'이 만들었다는 점에서 저에겐 별로 와닫지 않았습니다. 이는 아마 저처럼 성서의 허구성을 알고 싶어 일부러 책을 사다보는 류의, 범신론이나 불가지론, 무신론을 가진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예수의 부활이라는 신비주의적인 측면을 저에게 환기시켜줬다는 측면에서 제게 꽤나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신자의 입장에서 예수의 부활이라는 믿음이 있으면 신학자들의 이론이 뭐가 됐든지 그리 중요치 않다라는 느낌이랄까요. 본질이 중요하지, 그릇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이 책을 통해서 '예수의 부활'이라는 믿음 하에 성서를 올바르게 해석해야 '예수의 부활'의 참된 뜻을 알수 있다는 점을 저 나름대로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프란치스코 교황과 한 언론인 사이의 편지와 만남을 책으로 엮은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라는 책도 기독교의 본질에 무지한 제가 상당히 인상깊게 읽은 책입니다. 여기서 교황은 '신비주의적 성향이 없는 종교는 철학이다'라고 설명합니다. 이 신비주의적 요소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교인, 무신론자 등등 으로 나뉘겠죠.

따라서 중요한 점은 이 신비주의적 요소를, 적어도 기독교 교인이라면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를 바탕으로 행동하느냐 하는 점일 것입니다.

글에서도 대충 나타나지 않을까 합니다만, 저는 한국의 기독교, 특히 한국의 개신교에는 꽤나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어머니나 친한 친구들 중 몇 명이 열심히 교회를 다니고, 한때 저도 다녔음에도 말입니다. 물론 이들 앞에서 이런 말은 되도록 안합니다.ㅎㅎ

이 글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나 십일조 등 한국 개신교에 대해서제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까지 시시콜콜 이야기하고 싶진 않습니다.

제가 앞에서 인용했던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를 보면, 교황을 만난 언론인 스칼파리가 교황에게 '친구들이 당신이 나를 개종하려 할 것이라 말하더라'라며 농을 던집니다. 교황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남을 개종시키려 드는 건 실로 허황된 짓이지요.그런 건 아무 의미도 없어요. 서로를 알고, 상대방에 귀를 귀울여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이해를 늘려 나가야지요."

저는 이 말이 종교의 본질을 상당히 잘 설명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교황이 각국에서 열렬히 환영받겠지요.

종교의 저러한 측면에 대해 한국 개신교가 어떻게 기여하고 있느냐고 제게 묻는다면, 저는 도움은 커녕 오히려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신교 곳곳에서 이른바 올바른 믿음에 대해 나름 다양하게 노력하고 있다는 측면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도 궁금합니다. 제 탓이기도 하겠지만 사실 주위에 이런 주제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욕심이겠지만, 누군가 제 페북 글을 본 사람이 '너의 글을 읽었는데, 이러이러한 점은 잘못됐다'고 이야기해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그러고보니 제가 종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지식을 갖추고 있지도 못하네요. 어째 됐건 종교, 나아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탐구는 계속될 것 같습니다.

Posted by 타다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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